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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미켈란젤, 신이내린 화가이자 조각가

블로구마 2025. 4.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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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신의 어머니는 인간의 어머니와 다르다

<피에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탈리아) 1498~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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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탈리아) 1498~1499 대리석 높이 175cm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산피에트로 대성당 : 미켈란젤로가 25세 때 프랑스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한 조각이다. 피에타란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이탈리아 어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을 말한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조각에 몰두하느라 돌가루를 뒤집어쓰고 작업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이를 본 다빈치는 그를 비웃기도 했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런 시선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화가'가 아닌 '조각가'로 불리기를 바랐으며, “조각이란 대리석 안에 갇힌 인물을 해방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피에타>는 조각 예술이 어디까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이 작품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제목인 ‘피에타(Pietà)’는 라틴어로 ‘자비’, ‘경건’, 그리고 ‘애도’를 의미합니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예수는 고통과 세월이 느껴지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그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너무 젊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정결하고 티 없는 성모 마리아는 젊음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인간으로서 고난을 겪은 예수는 그럴 수 없다”고 설명했어요. 또, 성모 마리아의 차분한 표정이 지나치게 담담하다는 질문에는 “신의 어머니는 인간의 어머니와 다르게 운다”고 말하며 자신의 의도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는 절제된 슬픔이 담겨 있으며, 마치 현실을 초월한 듯한 신성함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안정된 자세로 큰 돌 위에 오른발을 올린 채 앉아 있고, 오른손으로는 예수의 상체를 부드럽게 받치며, 왼손은 바깥쪽으로 조용히 뻗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제사를 집전하는 사제와도 같은 위엄을 풍깁니다.

이 작품은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체의 비례와 옷 주름까지 하나하나 세밀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대리석이 화강암보다 조금 부드럽긴 해도, 마치 종이를 구겨 놓은 듯한 섬세한 표현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죠.

<피에타>가 공개되었을 당시, 이렇게 완벽한 조각을 젊은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에 그는 성모 마리아의 가슴에 드리운 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이름이 남아 있는 조각이지만, 그는 훗날 이를 경솔한 행동이었다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예술가로서 얼마나 깊은 신념과 표현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다비드상: 거대한 대리석이 꿈틀거리다

<다비드상>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탈리아)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걸작으로는 바로 <다비드상>이 있습니다. 이 조각은 단순한 인체 표현을 넘어 ‘용기와 지혜’라는 상징을 담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다비드상>의 모델인 다윗은 성경 속 인물로, 양을 치는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체구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위협하자, 그는 돌멩이 다섯 개만 들고 나가 골리앗의 이마를 정확히 맞혀 쓰러뜨립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표현으로 남아, 약자가 지혜와 용기로 강자를 이기는 상징으로 쓰이고 있죠.

미켈란젤로는 이 영웅적인 순간을 높이 5m가 넘는 대형 조각으로 구현했습니다. 다윗의 몸은 한쪽 다리에 무게를 실고 다른 다리는 자연스럽게 둔 자세로, 역동적인 긴장감을 줍니다. 이는 고대 조각의 정적인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점으로, 마치 다가오는 싸움을 앞두고 온몸으로 준비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요.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손에 쥔 돌멩이와 굳게 다문 입, 골리앗을 향해 날카롭게 시선을 고정한 다윗의 눈입니다. 작은 요소 하나하나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다비드상>을 완성한 뒤, 미켈란젤로는 곧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향하게 됩니다. 교황은 자신의 무덤을 장식할 대리석 조각을 맡기며, 미켈란젤로에게 특별한 사명을 안겼죠. 그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대리석 산지 ‘카라라’로 직접 달려가 6개월 동안 정성스레 재료를 고르며 작품에 대한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율리우스 2세는 이 작업에 금세 흥미를 잃고 비용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실망한 미켈란젤로는 피렌체로 돌아가 버렸고, 교황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면 직접 찾아오라”는 당돌한 편지를 보내기도 했죠. 당시 교황의 권위를 생각하면, 그의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피렌체 시의 중재로 미켈란젤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되었고, 원래 계획했던 무덤 조각 대신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와 제단화를 맡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또 다른 걸작들을 세상에 남기게 되었지요.

미켈란젤로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각칼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기 6일 전까지 <론다니니의 피에타>라는 작품을 다듬고 있었고, 이 조각을 자신의 무덤가에 세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오히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표현 속에 삶과 죽음을 초월한 고요한 감동이 담겨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치열함과 노년의 고요함까지,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통해 한 인간의 모든 감정을 진심으로 담아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론다니니의 피에타> 미켈란젤로(이탈리아)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죽기 불과 엿새 전까지도 그는 이 조각을 깎고 또 다듬었다고 해요. 이 작품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형태가 불분명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우리는 육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 사이의 깊은 정서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론다니니의 피에타>에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는 마치 한 몸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두 인물이 아니라, 서로를 끌어안은 하나의 존재처럼 보이죠. 기존의 피에타상들이 수평적인 구도였다면, 이 작품은 수직적인 흐름을 강조합니다. 이는 성모 마리아가 아들을 끌어안고 일어서는 듯한 모습으로,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절절합니다.

한번 상상해보세요.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 절망과 슬픔, 체념과 기도, 그리고 다시 의연함까지. 미켈란젤로는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을 단 하나의 조각 안에 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그가 만든 <피에타>가 육체의 완벽한 아름다움과 정교함으로 찬사를 받았다면,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완벽함을 내려놓은 채 삶의 본질과 죽음을 직면한 작가의 깊은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평생 완벽함을 추구했던 고집 센 예술가가 말년에 이토록 간결하고 담백한 표현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전해줍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자신이 사랑한 예술과 삶, 그리고 신과의 관계를 마무리짓는 마지막 기도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완성이지만, 그 자체로 완전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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